구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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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龜尾市)는 대한민국 경상북도 중서부에 있는 시이다. 과거에는 선산읍 중심의 농업이 산업의 주축이었으나, 1970년대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내륙 수출 산업단지를 보유한 도시로 발전하였다. 시청 소재지는 송정동이고, 행정구역은 2읍 6면 19동이다.

*구미 지역 지형

경상북도 중서부에 있으며 동남쪽에는 칠곡군, 서쪽에는 김천시, 북쪽에는 상주시, 동북쪽으로는 군위군과 의성군과 맞닿아 있다. 지세는 대개 서북방에서 동남쪽으로 경사를 이루며 시의 중앙을 낙동강이 북에서 남으로 관통한다. 서남단에는 해발 976미터인 금오산, 동쪽에는 사면석벽의 천생산, 동북쪽에는 청화산과 냉산(태조산) 등이 있다.

지질적으로는 낙동강을 중심으로 동·서측으로 구분된다. 금오산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화강암류와 화강암질 편마암류로 구성되어 있는 낙동강 서측은 오랜 침식으로 노년기 구릉성 지역을 형성하고 있으며, 비교적 넓은 충적 평야와 낮고 평탄한 구릉이 주를 이룬다. 금오산 일대는 주로 화산암류로 이루진 급한 경사를 보이며, 기복의 차이가 심한 장년기 산세를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의 작은 하천은 대개 낙동강으로 직교하여 유입된다.

금오산의 화산암류는 주로 경상분지 내에서 일어난 화산 활동으로 형성되었는데, 구미시뿐만 아니라 칠곡군, 김천시의 3개 시·군에 넓게 걸쳐있다. 이 지역은 다양한 암석이 분포하여, 과거에는 금이나 은, 몰리브덴(질산환원효소, 니트로환원효소의 구성성분) 등을 채굴하였으나 현재는 채굴하는 곳이 없다.

구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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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의 역사

이 지역은 선사 시대부터 사람이 거주하였으며, 고인돌이나 삼국 시대를 전후로 형성된 고분군이 넓은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특히 신라에 불교가 처음 전해진 해동불교의 성지 도리사를 비롯한 불교 문화와, 길재를 연원으로 하는 이른바 영남학파의 한 축을 담당한 선산 사림의 유교 문화는 이 지역을 대표하는 상징이라고 할 수 있다.

17세기 초에 편찬된 《일선지》(一善誌) 인물조에 실린 인물은 327명으로, 같은 시기에 편찬된 《영가지》(永嘉誌)의 안동의 인물이 163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영남지방의 다른 읍에 비해서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를 보여준다. 특히 고려 말 이래로 길재, 김숙자, 김종직, 하위지 등 사림의 주요 인물이 다수 등장하였다. 이중환은 그의 책 《택리지》에서 “조선 인재의 반이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고 까지 할 정도였다.

특히 조선 초에는 1만 명이 채 못 된 인구가 임진왜란 이후 급격히 증가해 18세기에는 8만 명까지 증가하는 등 영남 지방의 주요 도시의 하나로 성장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특징의 배경으로는 낙동강과 그 지류가 흘러 형성한 넓은 경지와 자연조건으로 인해 다른 지역과 비교해 많은 사족(士族)들이 고려 말부터 조선 초까지 유입되었고, 이러한 세력들이 토착 세력과 함께 결합하면서 지방에서의 성장 발판을 마련한 것을 들 수 있다. 또한 농경에 적합한 수리적(水理的) 조건으로 농업 생산성이 다른 지방에 비해 높은 것도 이러한 원인의 하나이다.[7]

현재의 동 지역은 구미 등으로 불리다가, 경부선 구미역의 개설 이후 주요 중심지로 부상하였다. 1963년에 구미면이 읍으로 승격한 이후[8] 구미국가산업단지가 조성된 것과 함께 1977년에는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을 관할하는 경상북도구미지구출장소가 설치되어 지금의 동 지역을 형성하였다. 1978년에는 선산군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을 합쳐 구미시를 설치하면서 양 지역과 구분된 독자적인 권역을 형성하였다.1995년에는 구미시와 선산군을 다시 합쳐 도농복합형 구미시를 설치하고, 구미시선산출장소를 설치함으로써 지금의 구미시가 형성되었다.

1995년 도농통합형 구미시 출범 당시에는 수출액이 92억 달러였으나, 1997년에 120억 달러였던 수출액은 IMF 구제금융사건으로 110억 달러로 감소했다. 그러나 1999년에 다시 130억 달러 수준을 회복한 뒤 해마다 수출액을 크게 늘려갔으며 2003년에는 200억 달러 수출을, 2005년에는 300억 달러 수출을 달성하였다. 현재는 구미국가산업단지 내에 1800여 개의 기업에서 근로자 10만여 명이 종사해 시 인구의 주요 축을 담당하고 있다.

*구미의 정치·행정

2014년 현재 국회의원 선거구는 구미 갑구와 구미 을구로 나뉘어 있는데, 구미 갑구는 낙동강 서쪽의 동지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구미 을구가 동 지역을 제외한 읍·면 지역과 인동동·진미동·양포동의 낙동강 동쪽의 동 지역으로 구성되어 있다. 두 선거구의 인구는 갑구가 219,127명이고, 을구가 171,288명으로 각각 56%와 44%를 차지하고 있다.

시의회 의원 선거구는 도량동·선주원남동에서 3명, 원평1동·원평2동·송정동·지산동에서 2명, 형곡1동·형곡2동에서 2명, 신평1동·신평2동·비산동·공단1동·공단2동·광평동에서 2명, 상모사곡동·임오동에서 2명, 인동동·진미동에서 3명, 양포동에서 2명, 선산읍·고아읍·무을면·옥성면에서 3명, 도개면·해평면·산동면·장천면·양포동에서 3명, 비례 대표 3명으로 총 24명을 선출하고 있다.

대통령 선거
선산군 지역은 1952년의 제2대 대통령 선거부터 투표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높게 나타났다. 당시 전국 투표율은 88퍼센트였으나, 이 지역의 투표율은 96퍼센트로 나타났으며 이후에도 구미시는 제15대 대선까지는 다른 지역보다 높은 수준을 유지하였다.

제5대 대통령 선거에서는 지역 출신이었던 박정희가 출마하였으며, 이 지역에서 박정희가 총 44,812표 가운데 34,882표를 얻어 78퍼센트의 지지율을 기록했다. 박정희는 이후 선거에서도 제6대 대선 82퍼센트, 제7대 대선 91퍼센트 등을 기록하며 지역에서 높은 지지를 얻었다. 지역 출신에 대한 높은 지지율은 제13대 대선에서는 약간 감소했지만, 여전히 노태우 후보가 75퍼센트를 얻어 높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후 제14대 대선에서는 김영삼 후보가 62퍼센트를, 제15대 대선에서는 이회창 후보가 62퍼센트를 얻었다.

구미시장
1995년에 지방자치제의 실시와 함께 선산군청 및 구미시청을 통합하여 발족한 구미시청은 민선 1기 김관용 시장{현.경북도지사}의 주도로 구미국가산업단지의 정보화 및 디지털 산업의 육성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기울였다. 김관용 시장이 재직했던 1995년부터 2006년까지 3배 이상 늘어난 3백억 달러를 달성하였고, 1998년 독일 콘라트 아데나워 재단에서 주관하는 ‘세계적 지방자치 우수단체’ 금상 수상을 비롯하여 ‘기업하기 좋은 도시 대상’, ‘지속 가능한 도시 대상’ 우수상, ‘국가 생산성 대상’ 수상 및 ‘생산성 향상 우수기관’ 선정 등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고성장을 바탕으로 인구도 1995년 당시 30만 명에서 2006년 38만 명으로 증가하였으나, 그만한 수준의 복지 시설이나 문화 시설이 확충되지 못한 점은 문제로 지적되어 왔다. 2006년 6월 30일에 당선된 남유진 시장은 이전의 산업 발달에서 형성된 공직 사회의 경직된 구조를 개혁하고, 교육과 환경을 고려하여 이른바 ‘세계적인 명품도시’ 구상을 여러 차례 발표한 바 있다.그러나 ‘전임 시장의 흔적 지우기’라거나 ‘특정 지역 인사 우대’라는 비판과 함께, 시민들이 ‘명품도시’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있다.

구미시청

구미국가산업단지 조성과 함께 인구가 증가하고, 그에 따른 행정 수요가 증가함에 따라 1977년 경상북도 구미지구출장소를 설치하여 구미읍 일원과 칠곡군 인동면 일원을 관할로 하였다. 이후 1978년 구미시 출범과 함께 경상북도 구미지구출장소의 관할이었던 구미읍과 칠곡군 인동면을 관할로 하는 구미시청이 개청하였다. 당시 면적은 129.11평방킬로미터로, 인구는 72,037명이었다. 시청 기구는 3실 14과 5개 사업소 21개 행정동 등, 총 직원 487명이었다.[3] 1995년 선산군과 통합하면서 도농통합형 구미시가 출범하였고, 선산에는 구미시 선산출장소를 설치하였다. 2007년 10월 현재 본청의 1실 4국 6담당관 21과의 직원 600여 명과 함께 구미시의회 사무국, 선산출장소(4과), 3개 직속기관, 8개 사업소, 2읍 6면 19행정동 등 총 1500여 명의 직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현 시청 청사는 1978년 당시 신부동(현재 공단동) 금락 빌딩의 구미지구출장소에서 임차해 쓰던 청사를 사용하였으나, 건물이 협소해 원평동에 별관 2개소를 두고 있었다. 이러한 사정으로 새 청사의 필요성이 높아짐에 따라 송정동의 10,581평 부지에 총 건평 2,325평의 청사를 신축하게 되었다. 1978년 10월 5일부터 1979년 10월 6일까지 만 1년간의 공사를 통해 공사비 12억여 원, 연인원 6만 명이 소요되었으며, 1979년 10월 27일에 개청과 함께 11월 29일에 준공식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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